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빌헬름 2세 (문단 편집) === 대한제국 === 대한제국과 빌헬름 2세는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빌헬름 2세는 [[고종(대한제국)|고종]]을 동아시아의 카이저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고종과 밀서를 주고 받는 사이였다. 빌헬름 2세는 [[고종 황제]]가 [[일본 제국]]에게 먹히기 직전의 [[대한제국]] 상태를 세계 각국에 호소했을 당시에 "카이저 폰 코레아(Kaiser von Korea)", 즉 "한국의 황제"라고 반응해 준 양반이지만 공석에서는 거기까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아무것도 안한것은 아니었는데, 빌헬름 2세는 1902년 고종에게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지한다고 밝혔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29/2009092900279.html|#]] 자신의 동생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물론 하인리히가 일본제국의 편을 들었던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우호적이었지만 한국에서 깽판을 쳤다.] 빌헬름 2세가 고종의 서한에 반응을 보인 이유는 당시 [[영일동맹]]을 포함해서 영국이 세계 열강과 맺은 군사 동맹이 궁극적으로는 독일을 포위하여 고사시키려는 거대한 음모로 보았기 때문이다.[* 영일 동맹은 [[러시아 제국]]이 남하해서 대양으로 나가는 출구를 확보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러시아 제국은 18세기 이후 끊임없이 대양으로 진출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서 발트해와 북대서양으로 나가는 핀란드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중해로 나가는 발칸 반도와 터키, 인도양으로 나가는 [[아프가니스탄]] / [[파키스탄]], 북태평양으로 나가는 연해주 / 만주 / 한반도를 계속 공략하였으며 [[그레이트 게임|영국은 이들 지역에 끊임없이 개입하였다.]] 영일 동맹과 러일 전쟁은 이런 양국의 세계전략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실제적인 행동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은 영국과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압박도 고려해야 한다. 당장 [[러일전쟁]] 당시 [[독일 제국]]과 프랑스가 러시아 편에서 제대로 개입하지 못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미국이 두 나라를 상대로 어마어마한 압박을 가했기 때문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독일 제국에게 보낸 경고는 다음과 같다. "독일과 프랑스, 둘 중 하나라도 러일전쟁에 개입한다면 우리 미국은 '''[[일본 제국]]'''의 편을 들어 '''필요한 조치'''를 다하겠소."] 그나마 보낸 편지도 중간에 일본 측이 가로채는 등 조직적으로 훼방을 놓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